행동주의가 제시한 비전은 각 동물의 종이 어떻게 하여 이 환경에서 수행할 임무를 갖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종에 속하는 개체들은 비록 자신을 세상에 태어나게 한 개체들과 독립적으로 살며 행동할지라도 어떤 식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게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동물 둘이 자유롭고, 자유 선택권을 누리고 , 또 유리한 입장에 서기 위해 서로 다투고 있는 것처럼 우리 눈에 비칠 수도 있다. 그러나 보다 깊이 들여다보면, 동물들의 자유는 단지 각 개체의 행동 안에 들어 있는 것을 수행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으며, 각 개체는 이 행동의 명령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이 드러날 것이다. 달려서 앞으로 나아가는 동물이 있는가 하면, 깡충깡충 뛰는 동물도 있고 천천히 차분하게 걷는 동물도 있고 기어 다니는 동물도 있다. 이런 동물들을 주의 깊게 관찰하면, 각각의 종이 환경 안에서 서로 다른 차원의 임무를 맡고 있는 것이 확인될 것이다. 그래서 어떤 동물은 평원에서 살고, 어떤 동물은 언덕에서 살고, 또 어떤 동물은 산 위에서 산다. 당연히 동토에서 사는 동물도 있고 뜨거운 사막에 서 사는 동물도 있다.
여기서 인간과 다른 동물들을 비교하면, 어떤 차이가 발견된다. 중요한 차이는 인간에게 특별한 종류의 행동이나 특별한 종류의 주거지가 할당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분명히, 어떤 동물이 자연으로 부터 임무를 부여받는 것이 그 동물의 삶을 수월하게 만든다. 그러나 자연을 연구해 보면 이 지구 위에서 기후나 장소에 인간만큼 잘 적응하는 동물이 없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인간은 호랑이나 코끼리들이 살지 못하는 동토에서도 살 수 있다. 또 코끼리들과 호랑이들 이 사는 정글에서도 살 수 있다. 인간은 심지어 사막에서도 살 수 있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할당된 장소 같은 것은 없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인간은 지구의 어디서든 적응하며 살아갈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의 경우에 이 땅의 온 곳을 정복하도로고 운명 지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적응성 때문에 인간은 원하는 곳 어디든 갈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동물들의 행동을 살펴보면, 행동이 동물들이 수행하는 일과 관계 있는 동작으로 표현되고 있는 반면에, 인간에게는 특별한 동작 같은 것은 전혀 없다. 인간은 다양한 동작을 보일 수 있으며, 이 동작들을 인간은 아주 빨리, 또 아주 완벽하게 배운다. 또 인간은 특별한 것들을 할 수 있는데. 이 특별한 것들을 다른 동물들은 지금 까지도 하지 못했고 앞으로도 영원히 하지 못할 것이다. 인간은 이 지구 위에 등장한 이후로 줄곧 그런 일들을 해 오고 있다. 인간이 손으로일 을 한다는 사실이 매우 중요하다. 인간의 행동에는 절대로 제약이 없다. 예를 들어, 다른 동물들은 오직 한 가지 언어만을 갖고 있다. 영국의 개를 예로 든다면, 이 개는 미국의 개와 똑같은 방식으로 짖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타밀 사람을 이탈리아로 데려온다면, 그 사람은 이탈리아어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고, 이탈리아 사람들은 그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인류는 너무나 다양한 언어를 갖고 있다. 동작에 대해서도 똑같이 말할 수 있다. 인간은 가고, 걷고, 달리고 , 뛸 수 있다. 또 물고기처럼 헤엄을 칠 수도 있다. 이것만이 아니다. 사람은 춤 같은 인공적인 동작을 창조할 수도 있다.
각 동물은 오직 한 종류의 동작만을 갖고 있다. 사람의 동작은 그 종류가 너무나 다양한다. 그러므로 인간의 행동은 다른 동물들의 종류가 너무나 다양하다. 그러므로 인간의 행동은 다른 동물들의 행동처럼 고착되어 있지 않다. 확실한 것이 한 가지 더 있다. 아이에게는 지금까지 언급한 이런 능력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인간의 능력이 무한한 것은 사실이지만, 각각의 능력은 어린 시절에 인간 개인에 의해 습득되어야 한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인간이 언어를 습득하는 것은 능동적인 정복, 즉 노력을 통해서다. 운동을 모른 채 마비나 다름없는 상태에서 태어나는 인간은 연습을 통해서 다른 동물들처럼 걷고, 달리고, 오르는 것을 배운다. 그러나 이 모든 능력을 인간은 반드시 자신의 노력을 통해서 얻는다.
모든 것은 본인이 정복해야 한다. 인간이 소유한 능력이면 무엇이든 그 사람이 어린 시절에 정벅해 얻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가치는 어린 시절의 노력에서 처음 비롯된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이 지구의 어느 곳에서나, 또 어떤 조건에서나 사람들이 발견된다는 사실을 보았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자신이 사는 곳에 만족하며 그곳에서 사는 것을 기쁨으로 여긴다. 에스키모인들을 보면, 그들에게는 인생의 행복이 눈으로 덮인 광야에, 현란한 색깔로 긴 어둠을 깨뜨리는 그 빛에, 뼛속까지 파고들면서 영혼의 음악이 되어주는 그 매서운 바람 소리에 있는 거처럼 느껴진다. 냉혹한 기후와 그런 삶의 조건에 수반되는 모든 것들이 그들에게 행복을 준다. 그곳 아닌 다른 곳에서 에스키모인들은 절대로 행복할 수 없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열대에 사는 사람들에겐 그곳의 기후와 특별한 음식, 그곳의 습관이 삶과 행복에 반드시 필요하다. 어디를 보든, 우리는 언제나 똑같은 진리를 발견할 것이다. 사람은 고향을 사랑한다. 삶의 조건으로 절대적으로 부적절해 보이는 곳에 사는 사람들도 있다. 핀란드의 경우 국토가 바위투성이이고 춥고, 오랫동안 눈과 얼음으로 덮여 있다. 그럼에도 핀란드와 러시아 사이에 벌어진 전쟁은 핀란드 사람들이 그 황량한 땅에도 뜨거운 사랑과 애정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