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부름
언어를 관장하는 뇌 센터들이 발견된 것은 19세기 끝나갈 무렵이었다. 뇌의 피질에 언어를 다루는 두 개의 특별한 센터가 있다. 하나는 귀로 받아들이는 언어를 위한 센터이고, 다른 하나는 언어의 생산을 관장하는 센터이다.
생리학적 관점에서 이 문제를 고려한다면, 언어를 관장하는 신체기관 센터도 마찬가지로 두 군데가 있다. 하나는 언어를 듣는 데 쓰이는 센터(귀)이고, 다른 하나는 언어를 말하는 데 쓰이는 센터(입과 목, 코 등)이다. 이 두 센터는 정신적으로나 생리적으로나 별도로 발달한다. 언어를 듣는 센터는 언어가 발달하는 잠재의식이 자리 잡고 있는 곳인 정신의 신비한 측면과 관계있으며, 운동 센터의 활동은 우리가 말을 할 때 드러난다.
언어를 밖으로 표현하는 데 필요한 운동을 다루는 이 두 번째 부분의 발달이 더 늦는 것이 확실하다. 왜 그럴까? 소리를 만들어내는 이 섬세한 운동을 자극하는 것이 바로 어린이가 듣는 소리들이기 때문이다. 이 순서는 매우 논리적이다. 인간이 언어를 미리 갖춘 상태에서 태어나지 않는다면, 아이가 소리를 내기 위해서 먼저 자신이 속한 집단이 발명한 언어의 소리를 내기 위해서 먼저 자신이 속한 집단이 발명한 언어의 소리를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리를 만들어내는 데 필요한 운동은 타인의 소리들이 정신에 각인시킨 인상에 근거해야만 한다.
이 점은 논리적으로 이해가 쉽게 되지만, 언어를 둘러싼 신체 기관이 그런 식으로 발달하는 것은 논리 때문이 아니라 자연의 메커니즘 때문이다. 자연에 무슨 논리가 있는가? 자연 속에서 어떤 사실들을 처음 확인하게 되면, 사람은 대체로 "이것들이 얼마나 논리적인가!"라며 감탄하면서 "이런 사실들 뒤에는 방향을 잡아주고 있는 어떤 지성이 있음에 틀림없어."라고 말한다. 사물들을 창조하는 신비한 지성은 온갖 아름다운 색깔과 모양이 발견되는 꽃들의 세계보다 인간의 정신적 현상에서 훨씬 더 많이 보인다.
출생할 당시에는 언어를 듣고 말하는 활동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이 확실하다. 그렇다면 출생할 때에는 무엇이 있는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모든 것이 거기에 있다. 존재하는 것은 이 두 센터이다. 온갖 소리와 유전으로부터 자유로우면서도 언어를 흡수하고 또 언어를 말할 수 있는 센터들이 있는 것이다. 두 개의 센터는 언어를 종합적으로 발달시키는 메커니즘의 일부이다. 이 문제를 더욱 깊이 파고들면서, 우리는 집중하고 있는 어떤 감수성과 능력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언어를 배우는 것이 전적으로 언어를 듣는 것에 좌우되는데, 출생 전에는 아이가 아무덧도 듣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이의 활동은 출생 후에 시작된다. 아이가 태어날 때, 언어를 다듬는 작업을 시작할 수 있는 준비가 이미 갖춰져 있다는 사실은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신체기관
이제 메커니즘뿐만 아니라 신체기관들까지 공부하도록 하자. 틀림없이 이 메커니즘의 창조는 경이롭지만, 다른 모든 창조도 마찬가지로 경이롭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귀(언어를 듣는 신체기관)가 창조된다는 사실도 신기하지 않은가? 대단히 신비한 환경 속에서, 매우 섬세하고 복잡한 이 도구는 저절로 발달했다. 귀가 마치 어떤 음악 천재가 만들어 낸 것처럼 생겼다는 사실이 얼마나 신기한가. 꼭 뮤지션이 귀를 만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귀의 중간 부분이 '현'의 길이에 따라 서로 다른 소리에 진동하는 능력을 가진 하프처럼 생겼기 때문이다. 우리 귓속에 있는 하프는 64개의 '현'을 갖고 있으며, 이 '현'은 길이 순서대로 놓여 있다. 또 귀의 크기가 아주 작기 때문에, 이 현들은 달팽이 껍질 모양으로 배열되어 있다. 얼마나 놀아운 지능인가! 공간의 한계를 존중하면서도 음악 소리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다 구축해 두었으니, 그러면 누가 이 현들을 연주하는가? 아무도 연주하지 않으면, 하프는 오랫동안 벽을 등지고 않아서 침묵을 지킬 것이다. 하프처럼 생긴 것 앞에 북 같은 것이 자리 잡고 있다.
이 북은 소리의 파동을 받아들이는 역할을 한다. 공기 중을 떠도는 소리가 북을 때리면, 그 진동이 하프에 전달되어 특정한 '현'이 반응하게 된다. 이렇게 귀는 우리가 언어를 들을 수 있도록 돕는 정교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이는 자연이 설계한 정밀한 메커니즘으로, 인간의 언어 습득에 있어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
이제 우리는 언어를 듣는 기관뿐만 아니라 언어를 표현하는 기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말하는 능력은 두뇌의 운동 센터에서 조정되며, 입, 혀, 성대, 그리고 폐와 같은 기관들이 협력하여 소리를 만들어낸다. 이 과정은 매우 복잡하고 정교하며, 인간이 언어를 표현하는 능력을 갖추기까지 오랜 학습과 발달이 필요하다.
신생아는 태어나면서부터 소리를 듣고, 시간이 지나면서 소리의 차이를 인식하고, 결국에는 자신의 목소리를 조절하여 특정한 언어를 구사하는 단계로 발전한다. 이 과정은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두뇌의 발달과 깊은 관련이 있다. 언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아기의 두뇌는 언어와 관련된 신경망을 형성하고, 점차적으로 더 복잡한 문장을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도록 발전한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자연이 제공하는 메커니즘이 얼마나 정교하고 경이로운지를 깨닫게 된다. 예를 들어, 인간의 혀는 다양한 위치에서 움직이며 각 언어의 발음에 적합한 소리를 낼 수 있도록 진화했다. 또한, 성대는 공기의 흐름을 조절하여 다양한 음색과 높낮이를 표현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언어 습득의 메커니즘을 더 깊이 연구할수록, 인간의 두뇌와 신체는 언어를 배우고 사용하는 데 최적화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유아기에 언어를 듣고 습득하는 능력은 탁월하며, 이는 인생의 초기에 언어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따라서 유아기에는 풍부한 언어적 자극을 제공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며, 이는 이후의 언어 능력뿐만 아니라 사고력, 감정 표현, 사회적 관계 형성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결론적으로, 언어를 듣고 표현하는 과정은 단순한 생리적 작용이 아니라, 자연이 만들어낸 정교한 설계의 결과이다. 귀는 마치 음악을 감상하는 정밀한 악기처럼 작동하며, 입과 성대는 이를 표현하는 도구로 활용된다. 이러한 언어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것은 인간의 본질과 자연의 신비를 탐구하는 여정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