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적 창조자에서 의식적 근로자로
지금 아이의 발달 과정 중에서 엄마 뱃속에 있을 때의 삶과 비슷한 점이 많은 시기를 다루고 있다. 이런 유형의 발달은 3세까지 이어진다. 이 시기는 사건들로 가득하다. 창조의 시기이기 때문이다. 엄청나게 많은 사건이 일어나는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이 발달의 단계는 삶의 망각기라 불릴 만하다. 마치 자연이 어떤 분단선을 그어놓은 것 같다. 한쪽에선 사건들이 많이 일어나지만 그것들을 기억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다른 한쪽에선 이제 막 기억이 시작된다. 망각된 시기는 정신적 태아의 시기이며 어떤 기억도 불가능한, 육체가 태어나기 전의 태아기와 비교될 수 있다.
이 정신적 태아기에 언어와 팔의 동작, 다리의 동작 같은 것이 별도로 발달한다. 또 눈의 발달 같이 근육이 필요하지 않은 감각의 발달이 일어난다. 신체기관이 하나씩 따로 만들어지는 출생 전의 육체적 태아기처럼, 이 시기의 정신적 태아도 기능들을 따로 발달시키며, 우리는 그 기능들에 대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이때 인격의 통일성 같은 것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모든 것이 하나씩 차례로 발달한다. 그러기에 통일성 같은 것은 있을 수 없다. 통일성은 각 부분들이 다 완성될 때에만 가능하다.
3세가 될 때, 마치 삶이 활짝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 두 시기, 즉 정신적 태아기인 무의식적 시기와 그 뒤의 의식적 발달의 시기는 어떤 뚜렷한 선에 의해 명확히 구분되는 것 같다. 첫 번째 시기에는 의식적 기억의 기능은 아직 발달하지 않는다. 의식이 나타날 때에야, 성격의 통일성이 보이고 따라서 기억이 시작된다.
정신에 대해 말하자면, 3세 이전에는 건설과 창조가 이뤄지고(출생 전의 태아 속에서 육체적 건설과 창조가 이뤄지는 것과 비슷하다) 3세가 지나면 그렇게 창조된 기능들이 발달한다. 이 경계선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망각의 강 레테에 비유할 수 있다. 분명히, 3세 이전에 일어난 것들을 기억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러니 2세 이전의 일을 기억하기는 더더욱 어려울 것이다. 정신분석이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해 개인의 의식을 그 뿌리까지 캐고 들어가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어떤 사람도 3세 이전의 일을 신뢰할 만하게 기억해내지 못했다. 이는 매우 극적인 상황이다. 왜냐하면 무에서 모든 것이 창조되는 것이 이 첫 시기인데도 이 모든 창조 행위를 성취 한 개인이 아무런 기억을 떠올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잠재의식적이고 무의식적인 창조물, 다시 말해 이 망각된 아이는 그 사람의 기억에서 지워져 버린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3세에 어른 앞에 나타나는 아이는 이해할 수 없는 존재처럼 보인다. 이 아이와 우리 사이의 소통이 자연에 빼앗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의 발달의 그 시기에 대해 알든가 자연을 알든가 해야 한다.
만일 우리가 발달의 자연법칙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또 아이들이 출생 초기와 다른 형태의 삶을 취한다면, 어른은 아이의 출생 초기의 삶에 대해 알아야 하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연이 만들어 놓았을지도 모르는 것을 파괴해 버릴 위험이 있다. 따라서 만일 인간이 자연이 제공하는 혜택을 모두 잃을 것이기 때문에 대단히 큰 위험이 닥칠 수도 있다. 인류가 문명의 발달을 통해서 정신적인 부분이 아닌 육체적인 부분만을 보호했기 때문에, 아이는 자신이 감옥에 갇힌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만일 문명이 정신적 발달의 자연법칙을 적절히 지키지 않는다면, 아이가 정상적인 표현을 막을 장애들이 가득한 환경에서 살 가능성이 아주 커진다. 이 시기에 아이는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전적으로 어른의 보살핌을 받아야 하며, 따라서 어른들이 자연의 지혜나 과학을 통해 현명 해지지 않으면 정작 우리 어른들이 아이의 삶에 가장 큰 장애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받드시 기억해야 한다.
이 시기가 지나면, 아이는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특별한 기능들을 습득한다. 아이가 말로 자신을 옹호할 수 있게 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만일 아이가 어른의 압박을 느낀다면, 아이는 거기서 달아나거나 짜증을 부릴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목표는 자신을 방어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과 그 안에 있는, 자신의 발달에 필요한 수단을 정복하는 것이다. 이 시기의 아이는 환경 안에서 연습을 통해 발달을 꾀해야 한다.
그러나 아이가 발달시키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가? 아이가 그 전 에 창조해 두었던 것들이다. 그러므로 3세에서 6세까지의 시기는 아이가 환경에서 의식적으로 취하는, 의식적인 건설의 시기이다.
아이는 3세 이전의 시기에 일어났거나 본 사건들을 다 망각했지만 앞으로 벌어지는 사건은 이 시기에 창조해내는 기능들을 이용하여 기억할 수 있다. 아이가 창조한 능력들은 아이가 환경 안에서 의식적으로 수행하는 경험을 통해 겉으로 드러난다. 이 경험들은 단순한 놀이도 아니도 우연도 아니며 노력을 통해서 의식적으로 겪는 것이다. 이때 손이 지능의 안내를 받으며 일종의 노동을 한다.
첫 번째 시기에 아이는 환경을 관찰하면서 거기서 건설에 필요한 것들을 흡수하는, 일종의 정신적 존재였지만, 두 번째 시기에 아이는 자신의 의지를 따르고 있다. 처음에는 아이의 의지 밖에 있는 어떤 힘이 아이를 이끄는 것 같았다. 그러나 지금은 아이를 이끄는 것은 분명히 아이의 자아이며, 아이는 손의 활동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마치 예전에 무의식적 지능을 통해서 세상을 받아들인 아이가 이제는 손을 이용하여 세상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이 시기에는 다른 종류의 발달이 전개된다. 예전에 습득한 것들을 완벽하게 다듬는 노력이 펼쳐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언어의 발달은 4년 반이 될 때까지 자연적으로 계속되지만, 아이가 2년6개월이 되면 언어 발달은 모든 세부사항에서 거의 완벽에 이르게 된다. 지금은 아이가 언어를 더욱 풍요롭게 가꾸고 또 완벽하게 다듬는 시기이다.
이 시기가 완성을 추구하는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여전히 지칠 줄 모르고 흡수하는 초기의 힘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흡수 하는 정신이 계속되지만, 지금은 아이의 손과 그 손의 경험이 아이로써 손은 지능의 발달에 꼭 필요한 신체기관이 된다. 따라서 이전 에는 단순히 걸음으로써 세상을 흡수하고 지능을 발달시킬 수 있었던 아이가 이제는 손을 갖고 작업을 함으로써 지능을 개발해야 한다. 앞으로의 정신적 발달은 이 길을 밟게 된다. 아이는 단지 생명이 있기 때문에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아이는 자신의 노력을 표현할 공간을 가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