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의 정복
아이가 첫 번째 적응, 다시 말해 출생 직후의 적응을 제대로 성취하지 못할 때, 아이에게 퇴행의 특징들이 발달한다. 이 시기에 생긴 어떤 경향들은 성인이 되어도 그대로 남을 수 있다.
이런 퇴행의 특징들을 묘사하는 현대 심리학자들은 퇴행의 특징이 나타나지 않을 때 아이가 독립을 이루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경향을 매우 강력하게 보인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발달은 언제나 조금 더 큰 독립을 성취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활시위를 떠난 화살이 표적을 향해 직선으로 빠르게 날아가는 것과 비슷하다. 아이는 독립의 길을 따라 앞으로 착실히 나아간다. 이것이 정상적인 발달이다. 독립으로 이어질 길을 따르면서 보다 강력한 활동을 보여주는 것이 곧 발달인 것이다. 독립의 획득은 삶이 처음 시작할 때부터 시작된다. 아이는 조금씩 성장해 가면서 스스로를 완벽하게 가꾸고 그 길에 발견되는 모든 장애를 극복한다. 이때 아이의 안에서 생명력 같은 것이 왕성하게 활동하면서 아이가 발달의 길을 밟도록 한다. 이 힘은 '호르메'라 불린다.
만일 의식적인 정신의 영역에서 이 호르메와 비교할 만한 것을 찾아야 한다면, 호르메와 의지 사이에 비슷한 점이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호르메를 의지의 힘과 비교하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의지의 힘은 지나치게 약하고 또 개인의 의식과 지나치게 밀착되어 있다. 반면에 호르메는 전반적인 생명에 속하며, 그것을 우리는 진화를 촉진하는 어떤 신성한 힘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 진화의 생명력은 아이의 내면에서 어떤 행동을 성취하려는 의지로 나타난다. 이 의지는 죽음이 아닌 다른 것에 의해서는 절대로 깨어지지 않는다. 이것을 묘사할 적절한 다른 단어가 없기 때문에, 나는 이것을 그냥 '의지'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 생명력은 절대로 의지가 아니다. 의지라면 의식과 추론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이 생명력은 아이가 어떤 행동을 하도록 촉구하는 잠재의식적 생명력이다. 정상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아이의 안에서 이 생명력의 거침없는 작용은 우리가 '생의 환희'라고 부르는 것으로 나타난다. 아이는 언제나 몰입하며 언제나 행복하다.
초기에 이런 식으로 이뤄지는 독립의 정복들은 일반적으로 자연적 발달로 알려진 다양한 단계들을 말한다. 달리 표현하면, 아이의 자연적 발달을 면밀히 살필 경우에 아이의 발달이 곧 독립을 점진적으로 획득해 나가는 과정으로 확인된다는 뜻이다. 육체는 성장하려는 성향을 갖고 있다. 이 성향이 워낙 강하기 때문에 죽음이 아닌 다른 것으로는 이 성장을 막지 못한다.
이 발달을 설펴보도록 하자.출생하면서 아이는 어떤 감옥으로부터, 말하자면 엄마의 육체라는 감옥으로부터 스스로를 자유롭게 풀어놓는다. 출생을 통해서 아이는 엄마의 기능들로부터 독립한다. 갓난아기는 어떤 충동을, 말하자면 환경을 직시하며 흡수하고 싶어 하는 충동을 부여받는다. 아기가 '세상을 정복하려는 심리'를 갖고 태어난다고 말할 수도 있다. 아이는 세상을 자신의 내면으로 흡수하며, 그렇게 흡수하면서 정신을 형성해 간다.
이것이 삶의 첫 번째 시기의 특징이다. 만일 아이가 느끼는 첫 번째 충동이 환경을 정복하고 싶어 하는 욕망이라면, 환경은 당연히 아이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 같은 사실을 묘사하는 데 적절하지 않은 단어들을 사용하면서 아이가 환경에 '사랑'을 느낀다고 말한다.
감각기관
아기일 때 가장 먼저 기능을 시작하는 신체기관은 감각기관이다. 감각기관이라면 아이가 인상을 포착하는 도구가 아닌가?
응시하고 있을 때, 무엇을 보는가? 환경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본다. 듣기를 시작하자마자, 우리는 환경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듣는다. 우리가 포착하는 범위는 매우 넓다고, 거의 우주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자연의 길이다. 아이는 소리를, 잡음을, 사물을 하나씩 차례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아이는 모든 것을, 전체를 한꺼번에 흡수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사물들을 서로 구분하고, 소리와 잡음을 구분하고, 소리들을 서로 구분하는 것은 그 뒤의 작업이다.
이것이 정상적인 아이의 정신을 그린 그림이다. 아이의 정신은 먼저 세상을 통째로 흡수하고 그런 다음에 그것을 분석한다.
이제 환경에 매력을 강하게 느끼지 못하는 유형의 아이를 상상해보자. 놀람과 공포 때문에 환경을 향한 위대한 사랑이 상처를 입은 아이이다. 환경에 사랑을 강하게 느끼는 아이의 발달은 환경에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아이의 발달과 아주 다를 것임에 틀림없다.
생후 6개월 된 아이를 고려하면서 아이의 발달을 계속 살피도록 하자. 정상적인 성장임을 보여주는 몇 가지 현상이 나타난다. 생후 6개월이 되면, 아이는 육체적 변화를 겪는다. 이 변화 중 일부는 눈에 보이지 않으며 오직 실험을 통해서만 확인된다. 예를 들면, 위는 소화에 필요한 염소산을 배출하기 시작한다. 이빨이 나기 시작하는 것은 생후 6개월쯤 될 때이다. 이것은 출생할 당시에 완성되지 않은 육체를 보다 완벽하게 다듬는 것임과 동시에 성장의 길을 밟는 것이다. 이는 또 6개월이 되면 아이가 모유 없어도 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니면 적어도 모유를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뜻이다. 아이가 독립을 조금 더 획득하는 것이다.
이때까지 아이가 소화조차 시키지 못해 다른 것을 섭취하지 못하고 전적으로 엄마의 젖에만 의존해 왔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아이가 이 시기에 얻는 독립이 대단히 크다는 사실이 확인될 것이다.
6개월 된 아이는 이런 식으로 생가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젠 엄마 한테 의존하며 살고 싶지 않아. 나도 한 사람의 인간이며 이제 뭐든 먹을 수 있어." 가족에 의지하며 사는 데 대해 수치심을 느끼기 시작하는 청소년의 내면에서도 이와 비슷한 현상이 일어난다. 청소년들은 가족의 도움으로 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청소년들은 자신의 힘으로 살고자 한다.
결론
사람은 점진적으로 발달하고, 이 연속적인 독립의 단계들을 통해서 자유로워진다. 아이가 자유로워지는 것은 결코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독립의 한 현상이다. 정말로, 아이에게 성장의 기회를 주고 독립을 안겨주면서 아이를 자유의 길로 안내하고 있는 것은 자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