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의 정복
걷는 행위 자체가 매우 복잡함에 도 불구하고 생후 1년 만에 언어의 정복이나 방향감각의 정복과 더불어 성취된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걷기의 정복이 특히 더 중요해진다. 아이에게 걷기는 대단한 중요성을 지니는 생리학적 정복이다. 동물들에겐 그런 정복이 전혀 필요하지 않다. 걷기를 정복하기 위해 오랜 기간 정교한 유형의 발달 단계를 거치는 것은 오직 인간뿐이다. 아이가 성장의 단계에서 육체적으로 걷거나 아니면 자신의 두 발로 똑바로 설 수 있기 위해서는 먼저 3가지의 성취가 이뤄져야 한다. 어떤 위엄마저 느껴지는 동물인 소를 예로 들어보자. 생후 1년이 되어서야 두 다리로 서는 송아지를 상상이나 할 수 있는가? 송아지들은 태어나자마자 걷기 시작한다. 몸집까지 거대한 이 동물은 그래도 인간보다 열등하다. 인간이 태어날 때 터무니없을 만큼 무력한 이유는 인간의 건설은 훨씬 더 정교한 작업이고 따라서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걷기 능력과 두 발로 서 있을 수 있는 능력은 다른 요소들의 발달을 수반한다. 그 발달 중 하나가 뇌이다. 뇌에는 아주 큰 덩어리 밑에 자리 잡은 '소뇌'라는 부분이 있다. 소뇌가 급속도로 발달하는 것은 생후 6개월 때이며, 소뇌의 빠른 발달은 아이가 14개월이나 15개월이 될 때까지 계속된다. 그 다음에 성장이 느려지긴 하지만, 그럼에도 아이가 4년 6개월 될 때까지 소뇌는 계속 성장한다. 자신의 두 다리로 서고 똑바로 걸을 수 있는 가능성은 소뇌의 발달에 좌우된다. 아이를 지켜보고 있으면 소뇌의 발달이 쉽게 관찰된다. 똑바로 서고 두 발로 걷는 발달이 연이어 보인다. 아이는 6개월 때 뒤집기를 시작하고 9개월 때 기기 시작하고 10개월 때 일어서고 12개월 내지 13개월 때 걷기 시작한다. 그러다 15개월이 되면 아이는 안전하게 걸을 수 있다.
이 복잡한 발달의 두 번째 요소는 어떤 신경들의 완성이다. 만일 근육으로 가는 명령이 반드시 통과하게 되어 있는 척수신경이 완성 되지 않는다면, 절대로 그런 명령이 전달될 수 없다. 신경들이 완성되는 것은 이 시기이다. 걷기에 대한 정복이 이뤄지기 전에. 아주 복잡한 발달이 이뤄져야 하고 또 많은 것들이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안 된다. 반드시 이뤄야 할 세 번째 성취가 있다. 뼈대의 발달이다. 앞에서 확인한 것처럼, 아이의 다리는 아직 충분히 경화되지 않았다. 아이의 다리는 아직 연약하며, 아이의 몸이 유연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런 상태라면, 다리가 아이의 체중을 어떻게 지탱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아이가 걷기를 시작하기 전에 뼈대가 완성되어야 한다. 그러고도 한 가지가 더 남는다. 두개골의 뼈들도 아이가 태어날 때에는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 이 뼈들도 이때쯤 완성된다. 그래야만 아이가 넘어지더라도 머리를 다칠 위험이 사라질 것이다.
교육을 통해서 아이에게 이 시기보다 앞서 걷는 방법을 가르치길 원한다 하더라고, 우리는 그 목적을 성취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아이가 걸을 수 있는 능력은 동시에 일어나는 일련의 육체적 발달에 죄우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억지로 아이를 걷게 하고 싶어 한다면, 아이에게 심각한 피해를 입히지 않고는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한다.
자연과 아이
여기서 아이를 지휘하는 것은 자연이다. 모든 것이 자연에 달려 있다. 자연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동시에 이제 막 걷기를 시작하고 달리기를 시작한 아이가 그렇게 하지 않도록 막는 것도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자연에 서는 어떤 시체기관이 발달하면 반드시 사용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자연 속에서 창조는 무엇인가를 만드는 것만이 아니라 그것이 쓰일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신체기관은 완성되기만 하면 그 즉시 환경 안에서 쓰여야 한다. 현대적 용어로, 이 기능들은 '환경을 통한 경험'이라 불린다. 이런 경험들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신체기관은 정상적으로 발달하지 못할 것이다. 처음에 불완전한 신체기관이 완성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용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이는 환경 안에서의 경험을 통해서만 발달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런 경험을 '일' 이라고 부른다. 언어가 나타나자마자, 아이는 재잘거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되면 아무도 아이의 입을 막지 못한다. 아이가 말을 그치도록 하기는 정말 어렵다. 만일 아이가 말을 하지 않거나 걷지 않는다면, 아이는 정상적으로 발달하지 못한다. 그런 아이의 발달엔 어떤 정지 같은 것이 느껴질 것이다.
아이는 걷고, 달리고, 뜀으로써 다리를 발달시킨다. 자연은 도구를 먼저 만들고, 그 다음에 기능을 통해서, 말하자면 환경 속에서의 경험을 통해서 그 도구를 발달시킨다. 그러므로 아이가 새로운 힘의 획득을 통해 독립을 늘려갈 때, 아이가 온갖 기능을 마음대로 발휘하도록 내버려 둬야 정상적으로 발달할 수 있다. 아이가 독립을 획됙했을 때, 아이는 이 독립의 실천을 통해서 발달할 것이다. 발달은 저절로 오지 않으며, 현대의 심리학자들이 표현하듯이, 각 개인의 행동은 개인이 환경 안에서 수행하는 경험에 의해서 강화된다. 따라서 교육을 아이의 삶의 발달을 돕는 행위로 본다면, 아이가 어느 정도의 발달을 이룬 모습을 보여줄 때 우리는 기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아이를 지켜보며 우리는 "오늘 우리 애가 처음으로 말을 했구나" 라면서 즐거원 한다. 우리 어른이 아이의 이런 성취에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그 기쁜 은 배로 커질 것이다. 그러나 아이에게 환경을 통해서 경험을 직접 쌓을 기회를 충분히 주지 않는다면, 아이의 발달이 파괴되지는 않아도 불완전하거나 지체될 수 있다. 이 같은 사실을 고려한다면, 이건 문제가 제기된다. 바로 교육의 문제이다.
교육의 첫 번째 문제는 아이에게 자연으로 부터 받은 기능들을 충분히 발달시킬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단순히 아이를 즐겁게 만들거나 아이가 원하는 대로 하도록 그냥 내버려 두는 그런 문제가 아닌 것이다. 이것은 자연의 명령과, 말하자면 아이의 발달은 환경 안에서의 경험을 통해서 일어난다는 자연의 법칙과 협력하는 문제이다. 아이는 첫 번째 걸음을 뗌으로써 보다 높은 차원의 경험의 세계로 들어간다.